한국수석의 역사

한국의 수석역사에 대한고찰1

1.수석의 기본사상 ( 佛敎思想 / 道敎思想 )
愛石文化는 그 근본이 우리의 정신문화가 근저에 깔려 있다. 그것은 불교와 유교 도교의 사상의 애석인의 기본적인 정서 에 깔려있어 그 배경이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 나라의 애석사는 초기 승려( 僧侶 )들과 유학자들에게서 출발한 것이 현 재의 문헌에서 나타난 특징이다.

2. 元始 時代 : 약 5000년 전 ( 新石器 遺蹟 )
新石器時代에는 돌을 加工하여 돌칼, 돌화살, 돌도끼 등의 石器를 만들었으며, 이 흔적은 아시아 서부지방이나 중국 북부 의 고원지대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우리 나라에는 紀元 이후까지도 石器를 사용하며 삶을 이어온 흔적이 경기도 全谷 주변의 한탄강 줄기에서 많이 발견되는 것을 위시하여 전국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3. 百濟 時代
1) 辰斯王7년 392 년 路子工 ( 縮景造園기법 日本전수 )
자연의 경관을 정원에 造成하는 멋진 縮景造園의 훌륭한 기법을 日本에 가르쳐 준 사람이 바로 우리의 先祖인 백제사람 路 子工이며 그 뒤부터 일본에서도 石假山이 조 성되고 景과 수석의 始初가 싹트게 되었던 것이다.

4. 新羅 時代
1) 金 可紀 ( 문성왕 ) : ( 壽石 生活 )
당나라에 들어가 과거에 급제 신선술 ( 神仙術 )을 좋아하여 중국에서 이름이 높았다. 당나라 종남산 (終南山) 자오곡 ( 子 午谷)에 살면서 수석과 아름다운 화초와 도리( 挑李 )등을 많이 심고 실내에 돌을 안치하여 선경( 仙經 )과 도덕경( 道德經 ) 을 읽었다. 이분은 도가사상( 道家思想 )에서 애석한 선인의 한 분이다.

2) 勝 詮 法 師(호소왕) : ( 怪石資料 )
삼국유사(三國遺事) 우리 나라에서 愛石하여온 가장 오래된 기록은 멀리 천 여년 전 新羅時代로 거슬러 올라가 우리의 最 古史書인 三國遺事(1285년)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적혀 있다. 「勝詮法師는 돌의 무리들을 모아놓고 佛經을 論하고 강연했 으니 그곳은 萬項寺이니라 그 돌 80여 개는 지금까지 鋼司가 전하고 있는데 신령스럽고 이상한 것이 있다.」

5. 高句麗
1) 小獸林 王 2년 373 년 : ( 築山法 傳來 )
中國으로부터 築山法 ( 奇岩 怪石으로 築造하여 山을 만드는 것으로 石假山이라고도 한다)이 전래되었다고 한다.

6. 高麗 時代
1) 文 益漸 (1329~1398) : ( 怪石遺物 )
고려시대로 내려와서는 中國에 사신으로 가서 많은 風流를 보고 木花씨를 담뱃대 에 숨겨온 ” 文 益漸 ” 先生이 愛石하였 는바 그 實證으로 경남 산청군에 소재하고 있는 선생의 祠堂에는 지금도 많은 怪石과 奇石이 보존되어 있다.

7. 朝鮮初中期
1) 姜 希顔 ( 1417~1464년 / 世宗1~世祖10 ) 호 : 仁 齋
石譜名 : 養花錄 ( 怪石 禮讚 )
朝鮮朝에 이르러서 愛石의 값진 古典으로 평가되고 있는 仁齊 姜希顔(書畵家)의 養花錄은 지금부터 약 530여 년 전의 기록임에도 怪石에 대한 감상과 연출 기법 등을 상세히 적어놓은 보배로운 책이다. 『怪石은 곧 굳은 德을 지니고 있으며 참으로 이것은 君子의 벗이 됨이 마땅하다』라는 괴석 예찬도 아끼지 않았으며 世祖 때의 서화가로 훌륭한 怪石圖도 많이 그렸다. 세종23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 직제학인 인수부윤( 仁壽府尹 )을 지냈다. 특히 필체는 유명하여 세종왕이 옥새 를 부탁하였다는 사실로 보아 문신( 文臣 )중에 으뜸가는 존재라 느껴진다. 말년에는 돌과 시, 서화로 소일하며 애석인으로 살았다.

2) 성 임 ( 成任 ) ( 1421~1484년 / 세종3~성종15 ) 호 : 安 齊
石假山記 ( 壽石감상 / 石假山記 )
이조 판서를 역임한 이조 초기의 애석가의 선구자 역할을 하신 분이다. 안제( 安齊 )는 일찍이 자기 집 뒤에 기이한 돌을 모아 산을 만들고 이름을 석가산이라 하였으며 높이는 한길이 되었다. 석가산기( 石假山記 )에 보면 바위가 절벽 을 이루 어 시내를 배고 있는 것 같으며 바위 위에 장막을 둘렀던 우묵한 곳이 있다. 바위가 층층으로 포개져 계단과 같으며 분류 ( 分流 )가 어지러이 쏟아지는데 청천( 晴天 )의 우뢰처럼 귀를 시끄럽게 한다. 맑고 말은 돌은 희어 선경( 仙境 )이 완연( 宛然 )하니 와서 노는 의관자( 衣冠者 )들이 그치지 않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3) 성 현 ( 成俔 ) (1439~1439년/세종21-연산10) 자: 경숙 磬叔, 호: 용제 浮休子, 虛白堂
石假山記 ( 수석감상의 경지 )
애석인 가운데 약 500년 전에 석가산( 石假山 )을 만들 어 풍류호종( 風流豪從 )한 기계를 가진 애석가로 이조 초기의 명신이며 학자이다. 성현은 맏형 성임을 따라 중국 연경( 燕京 )에 갔을 때 기행시( 紀行詩 ), 관광록( 觀光錄 )을 지어 중국 학자들을 탄복 시켰다. 당시 명나라의 서가이며 애석가인 이공동( 李空洞 1472 ~1509년 )과 교유하게 되어 애석 취미에 더욱 관심이 컸다. 1474년 성균관 직강으로 임명되어 성종 5년 그 이듬해 한명회( 韓明澮 )를 따라 또 다시 중국 연경에 다녀 왔다. 2차에 걸친 중국연경 행은 이공동과의 교유를 통하여 애석 취미는 드디어 석가산( 石假山 )을 만든 경지에까지 도달했다. 석가산은 성임, 성현 두 형제가 자연미 축경에 다 같이 공통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집 뒤 빈땅에 돌을 모아 산을 만들어 높이가 근 한길이나 되고 뭇 봉우리가 높이 솟아 중앙의 봉우리를 보고 절을 하는 것 같으며 뭇 골짜기는 겹겹이 싸여 동부( 洞府 )가 되어 있고 옆 봉우리와 가로놓인 산마루가 면면히 겹겹이 쌓여 기이한 현상을 하여 마치 삼산( 三山 ), 삼신산( 三神山 ), 오악산( 五岳山 ), 태산( 泰山 ), 관산, 항산( 恒山 ), 산고산( 山高山 ), 숭산을 모아 한 덩어리로 만든 것 같다. 석가산부( 石假山賦 )는 이와 같이 용제 성현의 수석취미가 전아( 典雅 )한 경지에 서 호종( 豪從 )한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4) 이 황 ( 李 滉 ) ( 1501~1570년 ) 호 : 퇴계( 退溪)
紋樣石을 즐기며 愛石 ( 애석 생활 )
이황은 이이( 李珥 )율곡과 함께 우리 나라 유학사상 가장 대표적인 학자로 주자( 朱子 )의 이기이원론( 理氣二元論 )적 사 상을 계승하여 그의 사상을 발전 시켰다. 그는 학문에 임하여 겸손하고 신중한 태도로 독단과 경솔을 배격하였다.
유학자로선 수석의 세계에 처음 등장한 인물이라 하겠다. 선생의 수석 일화 중에 명종 초 1548년 10월 단양( 丹陽 )군수에 서 풍기( 豊基 )군수로 부임할 때의 일이다. 평소에 애석했던 장석( 掌石 )손바닥만한 돌만 지니고 말 한마리에 선생의 소지 품을 싣고 떠나셨다는 일화에서 선생의 고매한 인품을 접할 수가 있는 있다. 선생의 유명한 사단칠정(四端七情)론으로 우 리 나라 유학자로서 이 문제에 언급하지 아니한 사람이 없을 만큼 중요한 주제를 던진 것이다. 그의 학설은 일본에도 큰 영 향을 끼쳐 메이지 시대 (明治 時代 )의 교육이념의 기본정신을 형성하였다. 선생의 단양 군수기간은 6개월 밖에 안되지만 “상성암”과 목순동에서 즐겨 탐석 하였다.

5) 홍만선(洪方選)(1643~1715년 /인조21-숙종41) 호: 유암(宥岩)
愛石記錄 : 산림경제( 山林經濟 ) (양석법 제시)
산림경제( 山林經濟 )는 사회 경제 사상을 함축한 가치 있는 저술로서 이조시대의 대표적인 과학서 중 하나다. 이 저서 가운데 괴석( 怪石 )의 란에 수석의 이론과 산지 양석 방법 수석의 석창포를 심는 방법, 돌에 이끼를 붙이는 법 등을 기술하 고 있다. 300여 년 전에 전통적인 수석문화가 정립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송도( 松都 )의 남쪽 20여 리에 경천 사 ( 敬天寺 )가 있다. 절에서 북으로 3,40리 가면 많은 수석이 나온다. 석색은 청백하고 산봉우리는 높고 산언덕은 가파르 며 낭떠러지는 골이 생 겨 구름이 번개를 감싸고 있다. 이와 같은 산수경석의 형태를 지닌 돌이 산출되고 수반에 물을 넣어 안치하여 보면 물이 자연으로 돌의 정봉( 頂峰 )까지 빨아올려 일중에도 마르지 않는다. 이끼가 반란( 班爛하여 그 형모( 刑 模는 심수향( 沈水香 )과 닮았다. 때문에 이것을 심향석이라 이른다. 실로 천하의 결보( 結寶 )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수석 산지는 신계( 新溪, 안산(安山), 수락산, 단양, 풍천 등 각 지방의 석질 등을 구명 마분(馬糞)을 이용하여 이끼를 양 석 석부 하는 방법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이 300년 전에 유 암( 流岩 )선생은 수석전문가로서 높이평가 된 다. 우리 나라 수석 문화의 이론체계가 1670년 전후로 정립되어 온 것으로 생각되는 것은 바로 산림경제에서이다.

6) 茶山 丁 若鏞 )(1762~1836년/영조38-헌종2)
호: 다산(茶山)(수석생활)
문장과 경학(經學)에 뛰어났으며 수원성 ( 水原城 )을 쌓을 때는 기중가설 (起重架說)에 의한 활차녹로를 만 들어 과 학 적인 기술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선생은 당대에 배출한 문신 중 군계일학이었다. 신유사옥( 辛西邪獄 )이 일어나 강진 ( 康 津 )으로 귀양갔을 때. 선생은 강진에서 19년간 독서와 저술에 힘쓰는 한편 애석 취미에도 여념이 없었다고 한다.
경세유표( 經世遺表 ) 목민심서( 救民心書 ) 흠흠신서( 欽欽新書 )등 그의 대부분의 저서는 이 귀양지에서 완성되었다. 다 산은 조선학계에 전개된 진보적인 신학문을 집대성한 실학파의 대표이다. 수석취미는 여가의 정신적 위안을 안겨다 준다. 참담한 귀양생활에서도 명석 한점 한점에 심취하여 자신의 생활을 찾았다는 것에 무게를 두고 싶다.

7) 秋史 :金 正喜 (1786~1856년/정조10-철종7)(명필전래 / 수석선물)
名筆 :「天下怪石」「壽石老笞池館」「山水石」
秋史가 손수 쓴「天下怪石」「壽石老笞池館」「山水石」등 天下名筆이 지금도 拓本 또는 寫本 그리고 書刻으로 보존되어 내 려오고 있다. 서예가로서 혹은 고증학자, 금석학자로 유명한 秋史는 20세 때 아버지 노경( 魯敬 ; 이조판서 )을 따라 연경( 燕京 )에 가서 당세의 거유( 巨儒 )로 명성을 떨치던 완원( 玩元 ), 옹방강( 翁方綱 )등과도 막역하게 지냈으며 완원은 자기 가 지운 소재필기( 蘇齋筆記 )를 처음으로 초해서 완당에게 기증까지 하였다. 완원은 청나라 말기의 유명한 애석가며, 그의 애장석 가운데 하산욕우( 夏山欲雨 )란 명석(銘石)을 같이 선사하여 추사를 놀라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추사선생의 애석은 여기에서 출발하여 1840년 헌종6년에 제주도로 유배되면서 이곳에서 탐석 활동과 깊은 인연을 맺어 애 석인으로 오늘날 우리들에게 그 이름이 남겨지고 있다.

8) 香石 金 容鎭 ( 애석생활 )
아픈 병석에서도 애완하던 돌을 옆에 두고 어루만지다가 끝내는 禪의 境地에 이르러 運命할 때 幽宅에까지 가지고 갔다고 한다. 이처럼 죽어서도 못 잊는 돌의 참 멋은 작은 돌 속에 우주와 삼라만상이 깃 들어 있고 太古 의 神秘를 품은 채 無心 한듯 하면서도 詩情과 情趣를 풍겨 주는데 있을 것이다.

9) 孤山 尹 善道 ( 五友歌 )
文獻名 : 五友歌(弟五君子/五友歌)
옛 선비들이 無我의 경지에서 세월이 담긴 돌 하나를 文匣 위에 놓고 太初의 피부를 어루만지며 바라보는 風流는 神仙의 경지까지 이끌어 주었으며 이 氣品을 사랑하여 文房의 第五友이자 弟五君子로서 愛玩해 왔던 것이다. “내 벗이 몇인고 하니 水石과松竹이라, 東山에 달 오르니 그 더욱 반갑구나.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孤山 尹善道가 五友歌에서 읊었듯이 이 水石과 松竹 그리고 달의 다섯 친구면 지금도 만족을 느낄 것이다.

10) 貫齊 李 道榮 / 小琳 趙 錫普 / 春谷 高 義東(米揷 拜石圖 계승 화백)/畵風繼承
米揷의 拜石圖를 줄여 말하면 中國 北宋時代에 이름난 書畵家인 미불은 평소 돌을 미치도록 愛玩한 愛玩家로서 어느 날 고을 太守로 부임하는 길모퉁이에서 그가 항시 흠모하던 奇岩 怪石을 발견하고는 그 자리에서 큰절을 올리는 것은 물론이고 매일 찾아와 큰절로 문안을 올렸다고 한다. 이런 故事에서 취한 그림으로 이 전통을 계승한 화백으로는 貫齊 李道榮, 小琳 趙錫 普과 얼마 전에 作故한 春谷 高義東이 있다.

8.朝鮮 後期 時代
1) 大 院 君 (壽石演出)
근세에 와서 돌과 蘭에 탁월한 심미안을 가졌던 大院君이 손수 설계 감독한 운현궁의 뜰이 있다. 養口의 직곡 산방, 마포의 아소정, 자하문 밖의 별저 등이 옛날의 古淡한 情趣를 품고 있다. 그 당시 대원군이 손수 어루만지며 愛玩하던 돌이 전래되 어 현재 수석계의 元老이신 韓기澤 박사가 소장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 先祖들이 돌의 韻致를 귀히 여겨 아끼고 사랑한 격조 높은 피가 오늘날 우리들 몸에도 흐르는가 보다. 지금도 古宮에 가면 品位있고 氣品있는 奇石, 怪石 등이 많이 눈에 띈다. 昌慶宮, 藏書閣 앞, 昌德宮 樂善齊正堂 뒤와 長樂門 앞 등 엔 돌 화분에 세워진 奇石들이 옛사람들의 얼을 간직한 채 묵묵히 옛스러움을 말해주고 있다.
조금 아쉽다면 그 돌의 産地와 年代 그리고 由來 등을 기록한 문헌이 없어 답답하고 안타깝지만 그러나 이렇듯 宮中에서도 돌을 사랑해 주었다는 것으로 흐뭇함을 금치 못한다.

2) 詩人 趙芝薰
“돌의 맛, 그것도 落木寒天의 이끼 마른 수석의 묘경을 모르고서는 東洋의 진수를 얻었다고 할 수 없다”라고 詩人 趙芝薰은 못을 박기도 하였다.

3) 朴斗鎭(詩的探究)
文獻名:「水石 列傳」
抽象石에 心醉한 詩人 朴斗鎭은 스스로 探石한 돌에서 詩想을얻어 읊은「水石 列傳」이라는 돌 詩集을 펴놓았다.

한국의 수석역사에 대한고찰2

1. 壽石 現代史의 槪要

1960년대 신문과 잡지를 통한 기고문 외에 각지방 수석인들의 선구자 역할은 현대 수석문화를 잉태하게 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활동은 70년대는 수석전문서적 및 각종의 수석 단체결성을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동호인들이 급속하게 늘어나는 수석문화의 태동기라 할 수 있다.
80년대에는 수석 붐이 조성되었다. 각지에서 수석개인전시회와 수석저서가 범람한 시기였으며 국제화에 눈을 돌리고 우리의 전통적 수석문화의 틀을 재구성한 시기였다. 80년 중반이후는 우리 나라 애석 문화의 중흥기로부터 성수기에 이른다. 85년에 접어들면서 전국 각 시·도 연합체제는 완성되었으며, 86년 12월 1일 현재 전국의 단위단체는 185개회 회원은 3,052명 정도로 추산되었다.
88년 서울 올림픽을 맞이하면서 우리수석문화가 한국의 전통적인 문화로 자리 매김을 하였고 수석인의 자긍심을 일깨워준 하나의 사건이었다. 90년대의 우리 나라 수석발전은 성숙기에 들어간다. 이시기는 주로 시, 수필집이 간행되어 애석의 중후한 경지에 도달한 면모가 면면히 나타나고 있다. 현재 한국 수석계는 70 80년대의 수석 붐은 사라지고 점차 고요한 정적의 양상을 띠고 있는 후양기에 들어선 것이다.
菜根澤에서 말하기를 「風趣를 얻는다는 것은 많음에 있지 않다. 작은 못, 작은 돌 하나에도 고요한 山水의 景觀이 담긴다. 빼어난 경치는 먼 곳에 있지 않다. 오막살이 草家에도 시원한 바람, 밝은 달이 있다」라고 했듯이 아주 작은 것에서 크고 풍요로운 것을 얻는 風流가 곧 縮景美의 極致로서 수석 취미의 보람을 갖게 한다.

우리 先祖들은 수석 취미를 조용히 소문 없이 애완하면서 끈기 있게 계승하며 전통을 이어왔다. 우리는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아 우리도 우리 固有의 수석 미를 찾아내야 한다. 우리 民族性에 맞는 한국적인 향토 미와 自然美의 적용을 좀더 체계적으로 계승 발전시켜야하며 하나의 사상으로 발전시켜나가야 하겠다

2. 1960年代 : 同好會組織 組織의 活性化

1) 石友會 조직
1966년 여름 서울에서「석우회」가 조직된다. 옛 선비들의 애석 취향을 이어받던 수명의 노년층 인사들의 모임이며 故 韓 基澤씨의 주도아래 세간의 관심을 환기 시켰다

2) 大韓 樹石會 발족
1966년 말에「대한 수석회 ( 大韓 樹石會 )」가 부산에서 문 용택( 文龍澤 )씨를 위시한 애석 동호인들의 회합이 조직되어 수석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기에 이른다.

3) 嶺南 藝石會 활동
” 嶺南 藝石會 “를 金 原伯, 鄭 二星, 李 赫鍾, 李 大錫, 鄭 岡憲, 安 重珣 등이 조직하여 본격 수석활동이 시작된다

4) 사회 단체 登錄
1986년 6월 21일에 문화공보부에서 사회단체 등록수리에 접하면서 본격적인 수석문화가 전개된다.

3. 1970年代 : 地域 單位 樹石會

1) 時代 狀況
70년대는 지역 단위 회가 도 연합회로 발전해사는 시기로 수석사의 조직에 애석인의 총 집합하고 있었다. 71년 초까지의 수석인구 200명~ 500명 추산되었다.

2) 蔚山 樹石會 발족
1970년 울산에서는 ” 蔚山 樹石會 “가 金 在浩 박사 (당시 울산대동병원 원장)가 주축이 되어 울산 수석의 기초를 놓았다. 그 당시의 회원으로는 김 윤영, 손 해익, 엄 영걸, 박 상호, 허 동은, 김 현, 지 천우 씨가 주로 활동하여 왔다.

3) 壽石 團體 結成 활성화
밀양 壽石會 거창 壽石會 서울 壽石會 부산 壽石會
대구 壽石會 영덕 壽石會 마산 壽石會 광주 壽石會
하동 壽石會 경주 壽石會 영주 壽石會 단양 壽石會
인천 壽石會 통영 壽石會 제주 壽石會 등 30여 개 단위 단체 결성 수석 발전에 초석이 되었다

4) 道 壽石 聯合會 胎動
1976년 10월 4일부터 8일까지 경북 수석연합회 제1회 전시가 동아백화점에서 ( 회장 崔 益三 )개최되어 전국 도 연합 전시 로서는 효시가 된다. 15개 수석단체의 종합적 전시가 한 장소에서 펼쳐진 것이다.

4.1980年代 : 道 地部 聯合會

1) 時代 狀況
1976년 10월 4일부터 8일까지 ” 경북 수석연합회 ” 제 1 회 전시가 이후, 전국 도 연합회가 결성되어 77년에서 80년대까지 는 서울특별시는 물론 전국의 도 연합회가 결성되었다. 80년대에는 우리 나라 애석 취미 문화의 중흥기로부터 성수기에 이른다.
1985년에 접어들면서 전국 각 시·도 연합체제는 완성된다. 84년 6월 23일 부산수석연합회 창립전시회가 시민회관에 서 성대히 거행된다. 이로부터 전국의 수석단위단체의 전시가 연합회중심으로 합동 전시로 전환되어 그 경향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85년부터 각 지역에서 저명 애석인들의 개인전시회가 열리고 바야흐로 애석 취미의 일대 붐이 일어나 일반대중의 저변 확대가 고조되어 애석 인구 100만 명으로 추산되기도 했다. ” 한국 수석 총 연합회 “가 문공부에서 사단법인사회단체 로 인가 받은 것은 민족의 심오한 정신 문화와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2) 韓國 壽石會 창립
전국 애석인의 친목단체「 한국 수석회 」가 1981년에 창립되어 활동하기에 이른다.
3) 大邱 廣域市 壽石 聯合會 분리창립
82년 대구직할시로 승격되어 자동 적으로 수석연합회에서 10월 16일 분리되어, 82년11월 10일 대구직할시 수석연합회로 개칭되어 초대회장 문 기열씨가 선출된다.

4) 慶尙 南道 壽石 聯合會
82년 7월 경상남도 수석연합회가 발족하여 초대회장으로 손해익 ( 孫 海 翼 )씨 선출. 특기한 것은 1983년 시 연합회로는 최초로 울산 수석 연합회 ( 蔚山 壽石 聯合會 )가 연이어 경남수석연합회의 영향을 받아 초대회장에 여 성준 ( 呂 成俊 )씨를 주축으로 부산과 연계하여 울산 지역의 수석 단합으로 전국 시 단위 연합회의 출발점이 되었다.

5) 忠淸 北道 壽石 聯合會
83년 07월02일 도내 15개 단위단체를 통합하여 초대회장 金 五坤씨가 선 출 수석 산지의 寶庫 충북의 애석인들의 결속을 과시하게 된다.

6) 釜山 廣域市 壽石 聯合會
84년 03월29일 창립. 초대 회장 구 철회 씨가 선출되어 수석요람지 부산의 애석인들의 사기를 충전

7) 仁川 廣域市 壽石 聯合會
84년 10월24일 창립. 초대 회장 임 석순 씨로 탄생

8) 忠淸 南道 壽石 聯合會
85년 03월09일 창립. 초대 회장 鄭 在翼 씨

9) 서울 特別市 壽石 聯合會
85년 04월28일 창립. 초대 회장 金 一斗 씨

10) 京畿道 壽石 聯合會
85년 07월13일 창립. 초대 회장 姜 容求 씨

11) 全羅 南道 壽石 聯合會
85년 11월03일 창립. 초대 회장 金 濟炫 씨

12) 全羅 北道 壽石 聯合會
85년 11월06일 창립. 초대 회장 金 德淵 씨

13) 江原道 壽石 聯合會
85년 11월 창립. 초대 회장 洪 鍾旭 씨 선출

14) 韓國 壽石 總 聯合會
1985년11월23일 창립 총회가 서울 올림피아 호텔에서 개최되어 초대회장 金一斗씨 선출.

5. 1960년대 전시회 문화

1) 창포 수석 전 ( 最初 展示會 )
1967년 11월 6일부터 개최한 서울 석우회 회장 고 韓基澤박사의 「 창포 수석전 」이 서울 신세계화랑에서 최초로 열림.

2) 個人樹石展示會 ( 最初 個人 展示會 )
1967년 4월 12일부터 7일간 “대한 수석회” 회장 문용택씨가 부산“공보관”에서 개인 수석(樹石)전시회가 처음으로 우리 나 라에서 개최되었다.

3) 壽石 專門店( 最初 壽石 專門店 登場 )
68년에는 서울에 “돌바위” 사「고사통」이라는 수석가게가 생기고 부산, 대구, 광주, 울산 등지에도 수석점이 나오게 된다.

4) 新聞 連載
1968년 대구의 金原伯씨는 애석 문화 활동에서 매일신문, 영남일보, 전북일보, 신아일보 등에서 수석에 관한 기고가 연재되 어 세인의 수석에 대한 관심 유도.

5) 석우회 전시회
1969년6월「영남 석우회」가 제1회 수석전을 대구 ” 공 화랑 “에서 수석 전시회 개최

6. 壽石 聯合 展示會 활동
1) 1970년 ( 지도활동 )
부산의 저명한 수석가 尹寄俊, 金南洙씨의 지도활동은 우리 수석계의 선구자임을 다시 알리는 계기가 됐다

2) 1976년 ( 연합전시 최초 )
1976년 10월4일 경북 수석연합회 제1회 전시가 동아백화점에서 ( 회장 崔 益三 )개최되어 전국 도 연합 전시로서는 효시가 된다. 15개 수석단체의 종합적 전시가 한 장소에서 펼쳐진 것이다.

3) 1980년
80년 ” 한국 수석회 ” 전시회가 열렸고, 해마다 열리고 있으며 최근에도 1997년은 대구에서,1998년은 마산에서 성대하게 대회를 치렀다.

4) 1981년「金原伯愛石牌」
1981년 10월 25 일 대구 냉천 자연공원에 전국에서 처음으로「 金原伯 愛石牌 」가 건립되었다. 비석의 총중량 대석 비석 상단 천연석( 최익삼 기증 ) “석영사괘석”을 포함하여 약5톤 비석의 크기, 길이, 3자반 높이 2자반 폭1자반 비석의 전장 8 자 지면에서의 높이 15자로 형성되어 공원에 찾아온 손님들의 눈길을 끌었다.

5) 1983년 ” 전국소품수석대전 ”
80년대의 한국 애석사에 특이한 역사의 기록은 1983년 9월에 사단법인 경향신문사 창간 37주년 기념으로 제1회 “전국소품 수석대전”이 울산에서 당시 경향신문에 재직하던 여성준( 呂成俊씨의 주선으로 최초로 전국 기획전이 열려 전국 500여 점의 출품석이 울산그랜드 호텔7층에서 5일간이나 전시되었으며 행사 대회장에는 김윤영씨가 맡고 집행위원장에는 여성준씨가 맡았다.

6) 1984년 ( 最初 國際 展示會 )
1984년에는 활화산처럼 불붙는 수석 열기가 고조된 울산에서 처음으로 한국, 일본, 대만이 참가하는 국제 수석전이 울산 상 공 회의소에서 열렸다. 이 행사를 주관한 여 성준( 呂 成俊 )씨는 일본과 대만을 오가며 국제 친선의 시금석을 만들어 한국 수석의 열기를 이때부터 동남아 전역에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7) 1984년 ( 개인수석전시 )
84년 8 월 4일부터 10일까지 한국장기신용은행 대구지점에서 尹 鍾五씨의 개인수석전시 개최

8) 1986년 ( 사회단체 등록 )
1986년 6월 21일에 문화공보부에서 사회단체 등록수리에 접하면서 본격적인 수석문화가 전개된다.

9) 1987년「 춘초 수석관 」
87년 9월 서울 유 양휴씨의「 춘초 수석관 」 개관.

10) 1988년「88한국수석대전」
1988년「88한국수석대전」이 제24회 올림픽 개최지인 서울에서 열림에 따라 전시 행사 중 문화예술 분야를 공연행사, 전시 행사로 나누어 88서울 올림픽 대회조직위원회의 후원을 얻어 문화 올림픽 전시행사의 일익을 담당. 끊임없이 이 땅에 수석 문화를 꽃피우려는 수석인 모두의 집념과 노력의 결실이라 하겠다.
한국의 고유한 수석문화를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자 하는 기회가 바로「88한국수석대전」이다. 준비 부위원장 20 명 내외 준비 심의위원 20명 ~ 30명 준비 집행위원 100명 ~ 150명 대전 사업부 20명 간사 1명 사무국장 1명 이상과 같이 88서울 올림픽 대회 조직위원회의 후원을 얻어 88년 9월 17일 ~ 28일 까지 300여 점의 출품과 아울러 세기의 수석대전은 절찬리 에 끝을 맺었다. 이로써 한국의 수준 높은 수석문화는 내외의 고차적인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11) 1988년 ( 사단법인사회단체 인가 )
한국 수석 총 연합회가 문공부에서 사단법인사회단체 인가 받음. 민족의 심오한 정신 문화와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예술이 기 때문이리라.

12) 1991년
91년11월15일 대구시민회관 대 전시실. 수석의 주류( 主流 )인 산수정경석 등 70여 점이 출품되어 격조 높은 수석예술의 자연미의 우수성 고취시킴.

13) 1997년 ( 수석연합회원전 )
97년10월 제21회 대구광역시 수석연합회원전은 일목요연하게 현대 한국수석사의 발자취를 가름한 일대 사건이었다. 지금까지 발간된 수석잡지와 저서, 석보, 단체 및 개인의 수석도보는 물론 초기의 수반 수석전시의 전국 기념품을 총망라하여 현 대 한국 수석사를 한 눈에 보이게 하였다.
기획 및 자료 수집은 원로 애석가 權 億善씨와 애석 시인 尹 鍾五씨 연합회 고문 인 金 在英 ( 70년대 전후를 통하여 수집한 메달 600개, 전국 각지의 전시안내장 1000매, 석보 200권, 패난트 등 기념품을 제공)씨가 했다.

7. 수석계 출판물 현황

1) 1970년대 출판물
1971년 ” 돌의 멋 : 수석취미의 세계 ” / 장 준근 저 : 수석입문서 / 현대 한국 수석계의 초유의 지침서로 평가된다
1973년 ” 壽石 列傳 ” 朴 두진 저 / 第 9 詩集
1973년 ” 壽石 列傳 ” 朴 두진 저/ 우리 나라 원로시인이면서 애석가로 널리 알려진 朴 斗鎭씨의 「수석의 열전」( 水石의 列傳 )은 1973년 12월에 발행되어 그 후속으로 1976년 2편을 완성 출간되었다.
1973년 4월 “盆載 壽石” 장 준근 저 /「 盆載 壽石 」격월간 잡지가 창간, 오늘날 한국의 애석사 인물로 평가
1975년 ” 수석 십 년 ” 최 신해 저 / 수석회 제10 수필집
1976년 ” 학의 목처럼 ” 백 만기 저 / 수석회 제11년 차 수필집
1976년 ” (續) 壽石 列傳 ” 박 두진 저
1977년 ” 수석 미의 탐구 ” 이 면근 저 / 1977년10월
1978년 ” 돌 노래 ” 尹 鍾五 저 / 1978년 9월. 시인 尹 鍾五씨의 수석 시조집「 돌 노래 」
1979년 ” 새로운 분재 백과 ” 이 면근 저

2)1980년대 출판물
1981년 ” 팔팔 인생16선 ” 한 원석 저
1982년 ” 수석 백과 ” 尹 錫圭 저
1982년 ” 水石의 作品 ” 정 원준 저
1982년 ” 수석. 돌 붙임. 분재 ” 오 창학 저 / 현대인의 취미백과 수석. 돌 붙임. 분재
1982년 ” 傳統 壽石 趣味 ” 張 俊根 저 / 1982년 6월. 전통 수석 취미
1982년 ” 휴식의 고향 ” 張 俊根 저 / 1982년 6월. ” 휴식의 고향 ”
1983년 “수석 입문 ” 鄭 永泰 저/「수석입문」수필집 출간. 한국의 아름다운과 자연취미의 재발견을 수석에서 찾았고 이에 대한 지침서적 성격.
1983년 “수석 백과 ” 尹 錫 圭 저 / 대구의 원로 애석가 尹 錫圭씨의「수석 백과」단행본이 출간. 애석인의 지침서로 평가.
1983년 ” 家庭 園藝 壽石 大百科 ” 윤 평섭 저 / 家庭 園藝 壽石 大百科
1983년 ” 수석 / 8권 ” 김 교식 저 / 家庭 園藝 壽石 大百科
1983년 ” 월간 수석 ” 崔 仁植 저 / 1983년 9월. 월간 수석 잡지의 문화공보부 등록이 승인,
1983년 ” 월간 수석 ” 崔 仁植 저 / 1983년12월. 창간호. 兪 良休, 金 永吉, 鄭 永泰, 安 重珣씨 등이 수석이론을 기고하여 교과서 역할을 담당하여 수석애호가들의 관심을 모이게 한다.
1984년 ” 回 路 ” 수석회 저 / 수필집19輯
1984년 ” 수석. 돌 붙임. 분재 ” 오 창학 저 / 수석. 돌 붙임. 분재
1984년 ” 壽石美의探究 ” 이 면근 저
1985년 ” 우리들의 20년 ” 수석회 저 / 수필집 20선
1985년 ” 옛 선비들의 애석 풍류 ” 張 俊根 저 / 4월 역 편집한「옛 선비들의 애석 풍류」가 85년 4월 출간
1985년 ” 돌의 향기 ” 尹 鍾五 저 / 수석수필집「돌의 향기」를 간행하여 尹 鍾五씨의 눈부신 활약상을 엿볼 수 있다.
1986년 ” 돌의 노래 ” 尹 鍾五 저 / 애석 시인 尹 鍾五씨의「돌의 노래」시집이 발간. 주옥같은 수석의 애정 어린 열정이 지면을 압도. 수석에서 시의 세계는 산수풍물의 자연을 구가하는 행위.
1986년 ” 시인의 돌 ” 徐 廷春 저 / 86년4월 徐 廷春씨의「시인의 돌」
1986년 ” 돌과의 사랑 ” 박 두진 저 / 23명의 시집과 수석수상과 수석시「 돌과의 사랑 」이 86년 4월 발행
1986년 ” 애석인 집 ” 尹 鍾五 저 / 86년 6월에서 10월까지 尹 鍾五씨의 수석과 시로 엮은 「 애석인 집 」2권이 출간.
1987년 ” 壽石 入門 ” 권 영한 저 / 취미의 수석입문
1987년 ” 수석 감상법 ” 鄭 永泰 저 /「수석 감상법」87년 4월
1987년 ” 뱃길 끊긴 나루에서 ” 金 鳳健 저 / 87년 7월 金鳳健씨의 수석에세이「뱃길 끊긴 나루에서」
1987년 ” 壽石 探究의 실재 ” 이 면근 저 / 壽石 探究의 실재
1988년 ” 壽石 譜 ” 춘천 지역 수석회 저 / 88올림픽 기념 수석 보 .춘천지역수석회
1988년 ” 벽을 넘어서 23 ” 수석회 저 / 벽을 넘어서 23
1988년 ” 수석. 돌 붙임. 분재 ” 오 창학 저 / 수석. 돌 붙임. 분재
1988년 ” 壽石 敎室 ” 세진 출판
1989년 ” 한국의 수석산지 ” 이 면근 저 / 한국의 수석계가 비약의 수석문화를 이루고 전진하게 된다.
1989년 ” 돌의 일화 ” 金 原伯 저 / 1989년5월. 80년대 마지막으로 석천 김원백( 石果 金原伯 )선생 의 유고집( 遺橋集 ) ” 돌의 일화 “가 출간. 수석원로가인 대구 경북 수석회 權 億善씨의 집필로 이루어짐. 현대수석의 태동기인 60년대와 70년대 초의 애석 활동을 엮은 것으로 70~ 72년까지 의 각 신문에 연재한 기고문을 편집한 것.
1989년 ” 수석 / 6권 ” 장 준근 저 / 가정 원예 수석 대백과
1989년 ” 수석 ” 지 윤환 저 / 감상에서부터 탐석까지
1989년 ” 수석 203-6 ” 지 윤환 저

3) 1990년대 출판물
1990년 ” 壽石 趣味의 실기 ” 이 면근 저 / 기초실기 ” 수석취미의 실기 ”
1990년 ” 水石 綠 ” 이 춘영 저
1990년 ” 수석 입문 ” 권 영한 저 / 1990년 4월
1990년 ” 난과 돌 그 열정의 세월 ” 이 성보 저 / 1990년9월 난과 돌 그 열정의 세월
1990년 ” 壽石 講座 ” 이 면근 저 / 自然의 藝術 壽石講座
1991년 ” 東洋畵 技法 ” 안 동숙 저 / 正統 東洋畵 技法
1991년 ” 水石 百科 ” 권 영한 저
1991년 ” 수석 한시 첩 ” 文 窓 저 / 91년 6월에 수필집으로 文窓씨의「수석 한시 첩」
1992년 ” 한국의 비장 석보 ” 이 면근 저 / 한국의 비장 석보
1992년 ” 대한민국 유명 수석 대보 ” 이 면근 저 / 대한민국 유명 수석 대보 제1집
1992년 ” 물같이 바람같이 ” 백 만기 저 / 물같이 바람같이
1992년 ” 수석 입문 ” 강 석희 저 / 8월 발간, 기초에서 탐석 감상까지의 저서는 94년 7월에 완성
1993년 ” 탐석 수첩 ” 이 면근 저
1994년 ” 水石 入門 ” 강 석희 저
1994년 ” 壽 石 / 72 ” 장 준근 저
1994년 ” 빛깔 있는 책들 ” 대원사 편집
1994년 ” 대한민국 유명 수석 대보 ” 이 면근 저 / 대한민국 유명 수석 대보 제2집
1995년 ” 돌과 더불어 한 평생 ” 石耆苑의「돌과 더불어 한평생」95년 4월
1996년 ” 애석 일로 ” 鄭 永泰 저 / 1996년4월「 애석 일로 」는 수석시와 화집으로 발간
1996년 ” 수석과 함께 살아온 세월 ” 權 五崇 저 / 1996년11월. 「수석과 함께 살아온 세월」
1997년 ” 水石 戀歌 ” 김 석 저
1997년 ” 어느 외톨이 구름의 노래 ” 尹 鍾五 저 / 시선 집「어느 외톨이 구름의 노래」가 1997년 9월 발행.
1998년 ” 壽石 의 世界 ” 안 중순 저 / 199811월.壽石의 世界
1998년 ” 거기에 섬이 있다 ” 이 번영 저 / 199811월. 수필집 “거기에 섬이 있다”. 제1부 오지의 행복 제2부 별이 빛나는 뜻은 제3부 환의 바람 제4부 내 마음의 올리브 나무